3월 23일 딸바보 아들바보
우리 하느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마치 공기와 같다고 한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데도 그것을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것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고마워하는 이들이 당신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실까?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루카 15,11-32 의 내용은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다. 그 이야기 속 아버지는 빼앗다시피 가져 간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돼서 돌아 온 둘째 아들에게 한 마디의 나무람도 하지 않는다. 그를 다시 품에 안으니 너무 기뻐서 아들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모두 잊어버렸나보다. 참으로 속도 없고, 딸바보 아들바보보다 훨씬 더 바보다. 자식이 없으니 부모의 그런 마음을 모르겠고 하느님의 사랑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을 글로만 알고 설교로만 전하고 있는 것 같다.
미카 예언자는 우리 하느님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미카 7,18-19).”
죄를 즐기는 사람 없고, 죄가 없는 사람도 없다. 사는 게 죄라는 말이 있는데 왜 그런 말이 생겨났는지 알 것 같다. 오랜 시간 정진하면 더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만 더 많이 쌓여질 것 같다. 지난 시간과 미래의 죄를 다 쌓으면 에베레스트 산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것들을 깊은 바다 속에 처넣어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고 청한다. 오직 하느님만 알고 계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돌아 온 나를 보고 그것조차 잊어버리시기를 기대한다. 우리 하느님은 속없는 딸바보 아들바보라서 산 같은 나의 죄를 바다 속에 처박아 달라고 청할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장 깊은 바다는 에베레스트 산보다 수천 미터는 더 깊다고 하니 말이다.
예수님, 주님은 당신이 받으신 사랑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알고 있으니 외아들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은 알 수 없습니다.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말씀을 믿는 것 말고는 제겐 희망이 없음을 또 다시 고백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아무도 들어가 꺼내올 수 없는 저 깊은 바다 속에 처 넣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가장 하느님을 닮은 이름을 지니셨으니 저에게 하느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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