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연중 11주일) 겨자나무?
예수님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전해주셨습니다. 한 처음에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함께 사셨고(요한 1,2) 사람이 되셔서는 한 사람으로 이 세상 안에서 사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와 세상, 두 곳을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셨고, 세상살이에 관심이 아주 많으셨습니다. 농사일과 정치는 물론이고 출산과 집안일 같은 여자들의 일까지도 잘 아셨습니다. 관심은 곧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살이에 관심을 가지셨던 것은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당신이 가져오신 하느님 나라를 생활 속에서 발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을 겁니다. 언제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주셨는데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설령 누군가 그분의 가르침을 다 알아들었다고 해도 하느님 나라는 언제나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요한 18,36).
하느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시고 말씀하시며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듯 사람들의 마음에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씨는 싹이 터 자라나 열매를 맺는데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심어진 하느님 나라도 그렇게 자랍니다. 농사일도 잘 아셨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겨자에 비유하셨습니다. 그것은 비록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크게 자라난다고 하셨습니다(마르 4,32). 그런데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풀입니다. 아무리 자라봐야 풀이라서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겨자식물을 잘못 아셨을까요? 아니면 마르코 복음사가가 잘못 옮겨 적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으니 그분과 함께 지냈던 이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분을 스승으로 따랐으니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제자들의 생활은 즐겁지 않고 그들은 천사들처럼 지내지도 않았습니다. 전도여행은 고달프고, 제자들끼리 불목하고 누가 높은 사람인가 서로 다투고 심지어 스승까지 배반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하느님 나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 나라는 그들 개인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붙잡히자 도망쳤겠죠.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많이 그리고 자주 실망합니다. 교회의 불충실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도 신성불가침 지역도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입니다(마르 2,17). 그렇다고 이 사실이 교회의 잘못을 외면하거나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죄인들의 모임 안에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려놓으시고 그것이 자라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잘못 옮겨 적은 것도, 예수님이 겨자식물을 잘 모르셨던 것도 아닙니다. 그 겨자씨는 반드시 자라 세상의 지친 모든 새들이 몸을 숨기고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될 겁니다. 우리는 바로 이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늘의 이 현실을 견디어내며 희망을 가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비우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하느님 나라 겨자나무는 계속 자라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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