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2월 8일(대림 2주일) 단순하게 사랑하기

이종훈

12월 8일(대림 2주일) 단순하게 사랑하기

 

한 번에 외출하는 때가 별로 없다. 현관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때는 그나마 운 좋은 날이다. 한참 가다가 차를 돌려 돌아오거나 너무 멀리 와서 그냥 불안한 채로 돌아다닐 때도 있으니 말이다. 책을 그렇게 많이 줄였는데도 아직도 책이 많다. 나중에 읽을 거라고 책장에 꽂아 둔 새 책에 먼지만 털어내곤 한다. 이젠 정말 짐들을 더 많이 정리해야 할 때다.

 

소유는 불편하다. 특히 하느님을 찾는 길에서는 거추장스러워 방해가 된다. 요한 세자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살았다. 광야는 척박한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의 옷과 음식은 하느님이 주신 그대로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요한 1,20.22.23), 군중 가운데 계신 구세주를 알아보았으며(요한 1,29), 그분을 제자들에게 소개해주어 그분을 따라가게 했다(요한 1,37). 한 마디로 그는 하느님을 알아보았다. 그분의 말씀이나 기적을 보지 않고도 그분을 알아 본 성모님을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그를 두고 가장 큰 사람이라고 칭찬하실 만하다(마태 11,11).

 

반면에 예수님은 요한과 다르셨다. 고요한 광야보다는 시끄러운 광장에 계셨다. 가끔은 홀로 산속에서 기도하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을 한시도 잊지 않으셨고 죽기까지 그분 뜻에 순종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당신을 보내신 분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심을 잘 아셨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예수님과 다르다. 그렇다고 요한 세자처럼 광야에서 동물의 가죽을 입고 곤충과 꿀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시끄러운 곳에서 인간이 만든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이웃들과 함께 산다. 요한처럼 극단적으로 가난하고 단순하게 살 수는 없어도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지 않을 수는 있다. 내게는 불필요한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절실한 것이다. 버리고 비워 검소하고 단순하게 심지어 가난하게까지 사는 것은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래야 마음이 맑아져 세상을 제대로 보고 진실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증언하셨던 진리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사랑하고, 자신이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그 간단한 계명을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독설에 가까운 경고를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일렀다(마태 3,8). 통회와 뉘우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삶을 실제로 구체적으로 바꾸어 이웃에게 선물이 되어야 한다. 세례가 곧 구원의 보증서는 아니지 않는가? 하느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 3,9).

 

주님, 사는 게 예전보다 많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위험도 유혹도 많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져서가 아니라 주님의 그 단순한 계명이 진리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더 굳게 믿게 도와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모님의 ‘예’라는 그 단순한 대답에 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저에게도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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