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4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쉬운 하느님의 뜻 (+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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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쉬운 하느님의 뜻

 

성경에서 나오는 인간의 위대한 말 세 가지, 혹은 사람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다음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이다.

 

이 세 가지 말의 공통점은 역시 하느님의 뜻이다. 어린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다. 부모는 언제 어디서나 아직 사리분별 못하는 어린 자녀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아드님까지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과 뜻을 따라야 우리 모두 살 수 있음에는 손톱만큼도 의심이 없다.

 

부모님의 말씀과 지시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 마라, 그만 가서 자라, 골고루 먹어라 그리고 듣기 싫지만 공부해라 등 그것들은 모두 실천사항이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하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알아듣기도 어렵거니와 그게 뭔지도 모른다. 그것은 윤리 도덕적이고 국가법에 충실한 것만도 아니다. 순교자도 예수님도 죄인이 되셨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세상일들은 무시하고 성당 안에서만 살 수는 없다. 세상 속에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데 어떻게 세상일에 눈 감고 살겠나. 주님께서 ‘오늘 할 일’이라고 적어주시거나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삐딱한 마음은 왜 생길까? 그것은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자기 자신, 자애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거면 기쁘고 거룩해진 것 같은 마음으로 따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잘 알아듣기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알아듣기 어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하기 싫은 거다.

 

하느님의 지시사항이라고 미리 겁먹을 필요 없다. 예수님이 이미 인류의 십자가를 다 짊어지셨는데 이 어린 자녀들에게 엄청난 일을 맡기실 리가 없다. 우리는 어쩌면 위인전과 성인전을 너무 많이 읽었거나 너무 미화되고 신격화된 부분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물독에 물을 채우고 그걸 다시 손님에게로 퍼 나르는 일이었다(요한 2,7-8). 결코 특별하거나 거룩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의 일상이었을 거다. 그리고 물을 포도주로 만든 건 예수님이지 그 일꾼들은 물론 성모님도 아니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이 어렵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말자.

 

아침부터 악한 일을 궁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다 먹고살기 위해 생각하고 궁리하고 실천한다. 그런데 그게 자기 자신이든 가족이든 회사든 수도공동체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 때 그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사랑은 본성이 이타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살기는 어렵지만, 내 계획안에, 내 삶 안에 이웃들의 자리도 만들어 놓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건 특별하거나 영웅적이지 않다. 밥숟갈 하나 더 놓고, 국에 물을 좀 더 붓고, 우리 모두 하나씩 덜먹는 정도면 된다. 하느님은 어렵고 무서운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참 좋고 쉬운 분이시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도 어렵지 않다. 함정이 많은 난해한 시험문제 풀 듯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충분할 것 같다. 그게 전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지는 않겠지만 굽은 자로 직선을 그으시고 우리의 죄도 구원의 도구로 삼으시는 분이니 사랑이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하느님은 그걸로 맛좋은 포도주를 만들어주실 거다.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시게.

 

주님,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자꾸 남의 일과 오지도 않은 내일 일을 걱정하며 푸념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하루살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 게 기억납니다. 오늘이 제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차고 기쁘게 보내자는 다짐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가 엘리사벳에게 들으셨던 칭찬은 저희 모두에게도 최고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무엇보다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새롭게 고백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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