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27일 비움과 하느님의 다스림(+ mp3)

Loading the player...

11월 27일 비움과 하느님의 다스림

 

오래전에 쓴 글이나 강론을 읽으면 웃게 된다. 아무 말이나 마구 늘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썼거나 그러기로 결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머리로만 복음을 들었고 그냥 뜨겁기만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우월 또는 특권 의식이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음이 보인다.

 

사는 게 마음 같지 않다는 푸념 섞인 고백을 듣는다. 깊이 동감한다. 아니 이제야 공감하게 됐다. 구상했던 계획과 꿈, 자식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런데 속상함과 괴로움을 넘어섰는지 웃음이 나온다. 이제야 비우기 시작하나 보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다 보니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들을 계속 듣는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어제 들은 복음말씀이다. 그리고 오늘은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여기서 이러한 일들이란 앞서 하신 무시무시한 일들이다. 성전이 무너지고,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이 돌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나는 거다. 이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한 마디로 나의 꿈들이 모두 무너지는 거다.

 

그런 것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절망하여 고개를 숙이지 말고 반대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한다. 구원과 해방이 시작되는 거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그제야 하느님이 당신 마음대로 나를 다스리기 시작하시는 거다. 그토록 바라고 꿈꿨던 것들이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비좁게 했다. 예수님은 가정을 꾸미지 않고 집도 없었고 성전을 짓지도 않으셨다. 당신의 뜻을 위해 튼튼한 조직도 만들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수도서원은 세례성사 그 이상이 아니다. 사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한 죄인이다. 부부의 사랑은 그 뜨거움이 식어 오래된 우정이 되어야 서로에게 구원과 해방인 것 같다. 무너져야 할 거라면 빨리 무너뜨리는 게 이롭다. 그래야 하느님이 다스리신다.

 

예수님, 세상사 마음 같지 않다는 푸념이 나오니 편안합니다. 맨바닥에 철퍼덕 앉을 때 가장 편합니다. 제 안의 꿈들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면 주님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쓸데없는 집착들이 오래된 체증처럼 주님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 매일 밖으로 내다 버리게 도와주소서. 아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793 [이종훈] 다해 12월 31일 주님의 천막(+MP3) 2021-12-31
1792 [이종훈] 다해 12월 30일 속량(贖良)된 백성(+MP3) 2021-12-30
1791 [이종훈] 다해 12월 29일 하느님 안에 머무르기(+MP3) 2021-12-29
1790 [이종훈] 다해 12월 28일(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하느님의 작은 사람들(+MP3) 2021-12-28
1789 [이종훈] 다해 12월 27일(사도 요한 축일) 신적인 친밀감(+MP3) 2021-12-28
1788 [이종훈] 다해 12월 26일(성가정 축일) 사랑수련(+MP3) 2021-12-26
1787 [이종훈] 다해 12월 25일(성탄새벽미사) 하느님 마음에 드는(+MP3) 2021-12-25
1786 [이종훈] 다해 12월 24일 하느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려면(+MP3) 2021-12-24
1785 [이종훈] 다해 12월 23일 엘리사벳(+MP3) 2021-12-23
1784 [이종훈] 다해 12월 22일 하느님의 세상으로(+MP3) 2021-12-22
1783 [이종훈] 다해 12월 21일 뜻밖의 선물(+MP3) 2021-12-21
1782 [이종훈] 다해 12월 20일 믿고 신뢰하게 하는 환경(+MP3) 2021-12-20
1781 [이종훈] 다해 12월 19일(대림 제4주일) 사제직을 위한 육체(+MP3) 2021-12-19
1780 [이종훈] 다해 12월 18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MP3) 2021-12-18
1779 [이종훈] 다해 12월 17일 믿음으로 읽는 역사(+MP3) 2021-12-17
1778 [이종훈] 다해 12월16일 남는 것은 사랑 뿐(+MP3) 2021-12-16
1777 [이종훈] 나해 12월 15일 나의 행복 하느님의 뜻(+MP3) 2021-12-15
1776 [이종훈] 나해 12월 14일(십자가의 성 요한 기념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MP3) 2021-12-14
1775 [이종훈] 나해 12월 13일(성 루치아 기념일) 회심(+MP3) 2021-12-13
1774 [이종훈] 12월 12일(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기쁨과 감사(+MP3) 20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