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슬픈 기쁨(+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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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주님 성탄 대축일) 슬픈 기쁨

 

성탄절이 왔다. 세상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모두가 혼란스러웠지만 성탄절은 왔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강화된 방역수칙 발표에 교구도 그제 미사참석 인원을 제한한다고 해서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본래 계획과는 다르게 아주 조촐하게 성탄 밤 미사를 봉헌했다. 지인들은 알록달록 성탄그림카드를 보내며 성탄인사를 보내왔다. 그중에는 부고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성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도 이랬을 것 같다. 권력자의 명령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임신하고 있던 마리아와 요셉은 고향을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했다(루카 2,1-5). 작은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고향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지만 권력자의 횡포에 불평을 했을 것이고 이런 불의에 저항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셨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힘과 이익을 진리와 정의로 만들어버렸다. 바로 그런 곳에 구세주가 탄생하셨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예언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들은 대로 베들레헴에서 구세주 예수님이 나셨다. 하느님의 인류구원 의지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죄악도 그 도구가 되어버린다.

 

성탄 때가 되면 사랑하는 창립자 알폰소 성인이 작곡한 캐롤, Tu scendi dalle stelle를 듣는다. 제목은 주님이 별에서 내려오신다는 뜻이다. 이태리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성탄이 아니라고 하고 바티칸 성탄 밤 미사에도 불려진다. 멜로디는 경쾌하고 동요 같다. 그런데 그 멜로디와 제목과는 다르게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슬퍼진다. 그 가사는 우리가 다 아는 교리이다. 하느님이 아기로 태어나시고, 춥고 얼어붙은 마구간 구유에 누였으며, 그분은 죄 많은 나를 위해 희생되셨다는 내용이다. 단순하고 경쾌한 멜로디를 따라 그 가사를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점점 아프고 하느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맞다, 나는 죄인이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데 하느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셔서 이 거칠고 차가운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오셨다. 온갖 생물을 먹이는 분이 엄마의 젖을 먹고, 우주 만물을 만드신 분이 권력자들의 횡포 아래서 생계를 위해 일하셨다. 우주의 주인이신 분이 그들에게 외면당하고 그들의 손에 살해되셨다. 그렇게 그분은 나를 구원하셨다. 하느님의 뜻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염치도 없이 이 선물을 넙죽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살길이 없고,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송구하고 주님의 인생을 슬퍼하면서도 우리는 기뻐한다. 그 캐롤을 다시 들으면 경쾌한 멜로디에도 슬픔이 묻어 있음을 느낀다.

 

구세주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이들은 그 근처 목동들이었다. 수석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아니었다. 그 당시 목동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게 순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었다. 천사는 그런 이들에게 처음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그걸 두고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3-14)”라고 찬미하였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환호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목동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 성경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 허구가 돼버린다. 내가 만일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내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이다(1요한 1,10).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적이 없다는 뜻이고, 예수는 박애주의를 실천한 여러 위인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이 잡힌 고기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분 무릎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하지만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초막을 지어드릴 테니 저와 함께 사십시오(루카 9,33).’, 아니면 ‘감히 주님을 어떻게 제 안에 모시겠습니까? 그냥 하늘에서 한 말씀만 해주셔도 저는 살 겁니다(마태 8,8).’라고 말씀드린다. 이게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이 기뻐하실 고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님, 죽는 날까지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 말로만 그러지 않고, 임금의 명을 받드는 신하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겠습니다. 주님의 명은 가볍고 편한 줄 알고 있으니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도 모르게 아드님 곁을 떠나지 않게 늘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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