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월 28일(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빈 공간
성모 동산 곳곳에 투박하고 소박한 벤치들이 놓여 있다. 수사님이 폐자재를 이용해서 만든 것들이다. 누구나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기도하던 사람, 산책하던 사람, 새와 고양이도 그 빈 의자에 머물러 쉰다. 그리고 제 갈 길을 간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빈 의자가 참 넉넉해 보인다. 하느님 마음이 생각나게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세로대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가로대는 이웃과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예수님도 하느님 사랑이 으뜸 계명이지만 이웃사랑도 그에 못지않다고 하셨다. 그의 하느님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표현된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1요한 4,20).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만 하느님을 사랑한다. 아무리 깊은 기도를 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이웃사랑이 없으면 그런 기도는 자기도취고 자신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친해지는 것이다. 하느님과 친하면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테고, 그분이 기뻐하고 좋아하실 일을 할 것이다.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실지 모를 수 없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겁먹을 것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건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고, 그분이 이미 다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이웃사랑 하러 먼 곳을 찾아 헤맬 필요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웃은 옆에 있다. 가족, 직장동료, 시장과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준다. 이웃사랑이 짐스러운 것은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다. 자신 안에 자신을 위한 계획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이웃을 위한 마음의 빈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 사실 내 안에 쓸데없는 걱정들만 내다 버려도 꽤 큰 공간이 만들어질 거다. 그러면 그곳에 하느님이 뭔가 가득 채워주신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마르 4,24).”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예수님, 빈 되에 무엇을 담아주신다는 건지 말씀 안 하셨습니다. 아마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비워 내놓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제 했던 결심이지만 오늘 또 새롭게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자기 안위와 쓸데없는 걱정들로 제 안이 너저분해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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