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5월 28일 하느님 앞에 설 때는
예수님은 성전을 아주 거칠게 폭력적으로 정화하셨다. 들것에 실려 온 중풍 병자를 무조건 용서하시던 그분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다. 성전에 대한 열정이 당신을 집어삼킬 정도로 컸기(요한 2,17)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전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거니와 불의한 거래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을 거다.
고쳐서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부품을 교환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건물이라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이 그들을 그렇게 거칠게 내쫓으신 이유는 그것은 타이르고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본래 성전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기도는 타협이나 거래가 아니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거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대할 수 없고, 협의하고 거래하듯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분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고 따른다. 그분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니 그분 앞에서는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 우주 만물이 당신 것이니 드릴 것도 바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분 앞에서 우리가 뭔가 할 게 있다면 그것은 솔직해지고 진실해지고 진심을 드러내려는 노력이다. 거친 세상살이에서 우리는 너무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고, 의심 판단 거래가 습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이런 것들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된다.
기도할 때 하느님 앞에 알몸으로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 집으로 들어갈 때 아무것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미련이나 미움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설 수 없다. 마지막 날에 용서하지 못하고 또 용서를 청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보다 더 불쌍하고 어리석은 영혼은 없다. 그날에 결국 그렇게 해야 함을 안다면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
예수님, 유혹은 받으셨지만 뒷걸음치시거나 옆길로 돌아가시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죽음도 주님을 막지 못했습니다. 하느님 뜻은 그런 것입니다. 곧게 뻗은 바른길입니다. 더디 갈 수는 있어도 되돌아가거나 옆길로 새지 않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언제나 주님의 길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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