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7월 23일 주님 계신 곳
예수님은 성체성사 안에 살아계신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답게 그리고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분답게 지극히 소박한 빵과 포도주 한 잔 안에 당신 전체를 담으셨다. 그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해놓으셨다. 먹고 마심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몇십 원짜리 빵을 사는 게 부담되는 이는 없을 거다. 우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거다. 알폰소 성인 말대로 우리 하느님은 제정신이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의 인격 안에 계신다. 성사를 집전할 때 주님은 사제의 인격 안에서 당신이 직접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신다. 못난이 사제라도 성사 경문만 그대로 잘 읽어주면 그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전달된다. 사제가 없어도 주님은 그 일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백성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거나 느껴지지 않으면 은총을 받았음을 알기 어려우니 그들을 불러 세워 그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말씀 안에 살아계신다. 태초에 하느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어 만드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병자를 낫게 하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서 사람들을 온전하게 만드셨던 것처럼 말씀 안에는 사람을 회복시키고 변형시키고 구원하는 힘이 있다. 십계명은 단순하고 실천적이다.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을 선명하게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하느님 말씀은 은유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다. 직설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신다. 그분은 기도할 줄 모르는 이를 도와 당신 아버지와 만나게 해주시고, 일하는 이와 함께 계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회의에 참석하셔서 당신의 길을 찾게 도와주시고, 모여 밥 먹거나 놀이하는 시간에도 참석하신다. 우리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탈출 20,5), 우리가 당신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주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분이시다. 외아들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가 당신만 바라보게 하신다. 하느님이 욕심쟁이라서가 아니라 그분 아니면 구원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지금은 코로나로 교우들이 성사 배령이 어렵습니다. 성사와 전례가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저희가 주님을 만나고 은총을 받는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저희가 그동안 너무 성당 안에만 있으니까 성당 밖으로도 나와 보라고 저희를 불러내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어디에나 그리고 언제나 저희와 함께 계심을 믿게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말씀을 잉태하여 사람이 되게 해주셨으니 제가 들은 말씀이 제 살과 피가 되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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