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7월 25일(연중 17주일) 보리빵 믿음(+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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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7월 25일(연중 17주일) 보리빵 믿음

암 투병 중인 가족 같은 지인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입원했다. 얼마 전 통화할 때 많이 좋아진 것 같아 희망적인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이었다. 병원에서는 기도삽관을 해야 할 것 같으니 가족의 결정을 기다린다고 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다. 환자가 정신은 맑으니 본인이 결정하게 할 것을 권했다. 그 후 온종일 하느님을 원망하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서운해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결정을 기다렸다. 그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그는 고비를 넘기는 중’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이 위중한 상태를 잘 견디고 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죽음을 잘 받아들이게 될 거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자이기를 바라지만 후자이어도 어쩔 수 없다. 그다음 날,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용감하고 거룩한 결정이다.

환자와 통화를 해야 했다. 먼 곳에 있어 달려가지 못하고, 또 간다고 해도 방역 때문에 등록된 가족 1인 이외에는 면회가 안 된다고 했다. 대면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대화하면 좀 나으련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정말 해야 할 얘기만 해야 했다. 생사의 고비에 있는 사랑하는 이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제로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고민스러웠다.

예수님은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싶으셨다. 단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들이 굶어 죽을 것 같아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먹을 거를 주라고 하셨다. 그들은 난감했다. 어림잡아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요한 6,7), 약 2천만 원어치 빵을 사야 했다. 내 마음이 딱 그랬다. 차라리 병원비 2천만 원을 마련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 공동체가 가진 전부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하는데(마태 14,17; 마르 6,38; 루카 9,13), 요한복음서에는 그 난감한 상황에 뜬금없이 한 아이가 등장한다(요한 6,9). 그 아이는 제자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가난하고 스승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또 스승이 가르쳐주지 않고 권한을 위임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지인과 통화를 앞둔 내가 오천 명을 먹이라는 주님의 명을 들은 제자들 같았다. 삶과 죽음 경계 앞에 있는 이에게 나의 지식과 경험은 그 아이가 바구니에 담아 가진 거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같았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강의했던 그 수 많은 말 중 건질 게 거의 없었다. 그런 것들이 다 거짓처럼 느껴졌다.

거친 보리빵과 물고기, 내가 가진 것 중 쓸 만한 것,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거라는 약속이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평화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권고였다. 이게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실제로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 나으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어색한 농담을 했지만, 그 말을 듣고 그는 울음이 터져 더 통화할 수 없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분은 예수님이었다. 제자들이 아니었다. 필립보에게 묻기는 하셨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6). 여기에 있든 저기에 있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다. 내가 아무리 선한 지향을 지녔다고 해도 선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 뿐이시다(마르 10,18).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다. 내게 주신 그 투박한 신앙, 보리빵 믿음,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그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믿음이 나를 구원한다.

예수님, 제 지향과 청원은 선하지만,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게 완전히 선합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제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바라는 아이처럼 청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켜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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