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10월 17일(연중 제29주일) 복음의 기쁨(+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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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10월 17일(연중 제29주일) 복음의 기쁨

요즘 대통령 후보자 열성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얼마나 실망했을지 짐작이 된다. 메시아 구세주는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줄 것이라고 잔뜩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사셨다. 그런 능력은 충분히 가진 것 같은데 혁명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도자가 되는 길을 피해 다녔고 결국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의 손에 살해됐다. 하느님이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구세주 메시아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이라고 예고하셨다. 하느님 말씀 따로, 그들의 기대 따로였다.

하느님은 혁명이 아니라 하늘나라 문을 사람들에게 열어주셨다. 그 문이 착한 목자고 그 길이 예수님이다. 그분은 얼마나 착한지 종처럼 양들을 섬기며 다 내주고 목숨까지 내놓으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늘나라는 서로 섬기고 다투어 희생 봉사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들, 또는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상상이지만 저기서는 현실인 곳이다.

그걸 알게 됐고 또 그리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우리들이다. 서로 섬기고 다투어 희생 봉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 공동체 그런 세상을 상상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그 나라에 속하고 싶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부풀어 오른 가슴과는 달리 실천은 초라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무관심, 반대, 비판 등을 반복적으로 받으며 기대와 기쁨 같은 뜨거움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낙담, 포기, 냉소같이 차가움이 자리를 잡게 됐다. 거기에 더해 세상과 공동체를 비판 비난하고 새로운 시도를 냉소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달관하고 지혜로워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 같다. 아! 참 어리석다.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게 마련이다(창세 8, 21). 하느님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실 계획이었으면 막강한 군대들을 파견하셨을 거다. 직접 사람이 되셔서 죽기까지 종처럼 섬기는 사람을 보내지 않으셨을 거다.

사제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다. 사람을 알고 하느님을 알아야 양쪽으로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진정한 사제는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니 하느님을 알고, 사람이 되셨으니 우리 처지를 아신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성당과 기도 안에서만 듣고 그 밖에서는 대세를 따르려고 한다. 어두운 데에서 들은 것을 밝은 데에서 말하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지만(마태 10, 27), 세상은 박해가 아니라 무관심으로 우리를 대한다. 괜한 수고를 하는 것 같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바보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자연스럽다. 예수님은 그 당시 누가 봐도 바보셨다. 그 능력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아셨는데도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고 거기서 끝까지 내려오지 않으셨다. 그 덕에 우리에게 하늘길이 열렸다. 그분의 섬김과 희생으로 우리 죄는 없어지고 우리 허물은 덮어진다. 우린 한 게 없다. 그저 믿기만 한다. 세상이 달리 말하고 이웃이 들은 것과 다르게 행동해도 하느님의 죽음으로 보증한 복음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서 바보가 하늘나라에서 높은 사람이다.

예수님, 주님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실망하고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실망스럽고 화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이 본래 그런 것이니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세례받은 사람은 모두 사제이고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으니 그들은 기쁩니다. 매일 하하 호호일 수는 없지만, 낙담 비난 비관을 지혜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기뻐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인생이라는 축제에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잘 살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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