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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다해 12월 19일(대림 제4주일) 사제직을 위한 육체(+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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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12월 19일(대림 제4주일) 사제직을 위한 육체


사제는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 사제들은 성전에서 사람들이 가져온 예물들을 하느님께 바쳤다. 그런데 그 예물을 바치는 행위는 곧 양, 염소, 비둘기 같은 동물들을 죽여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오늘날 사제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아마 사제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다. 이제 사제는 동물을 잡아 하느님께 바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바친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동물을 잡아 바치는 구약의 제사를 치우셨다. 히브리서는 하느님이 예수님에게 그것을 바라셨고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 5-7).’”

예수님은 사제요 제물이셨다. 그분만이 참 사제요 하느님께 바쳐질 합당한 제물이다.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 이름처럼 예수님을 따라 사제직을 수행한다. 가장 합당한 제물인 예수님께 자지 자신을 보태어 하느님께 바친다. 물질보다는 마음과 정성이 중요하다지만 아무것도 안 주고 안 해주면 그 마음과 정성을 알 수 없다. 육체는 정신과 마음을 표현한다. 사랑을 표현한다. 사랑은 재채기 같아서 감출 수 없고 가만있을 수 없다. 사랑하면 주지 말라고 해도 준다. 다 주고도 더 못 줘서 미안하고 그 앞에서 죄인이 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이나 정신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육체가 있으니 사랑하고 봉헌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상 한가운데서 남을 위해서 사셨다. 자신은 하나도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였다. 하느님은 그분에게 그것을 바라셨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 사제이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다. 자신을 버리고 이웃에게 철저하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고 사는 이유다. 우리는 그렇게 사제직을 수행한다. 그런데 집단이기주의란 말이 상식이 될 정도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화된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할까? 하느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수고하고 고생하기를 바라실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행복할까? 믿음은 하느님의 초대와 선물이면서 도전이다. 세례성사의 은총 안에 우리가 이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담겨 있다. 그것을 안 꺼내 쓰니까 있는 줄 잊어버리고, 자주 쓰지 않으니까 서툴고 어색한 거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세상에서 그것을 맘껏 다 쓰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5)” 자신을 찾아 먼 길을 서둘러 달려온 사촌 동생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이 한 인사고 축복이다. 세상은 동정잉태의 진위를 따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하느님을 신뢰한 마리아를 부러워하고 공경한다. 마리아의 동정잉태가 사실일 수 없다면 광활한 우주 만물은 어느 날 그냥 우연히 생겨난 거다. 어떤 재료도 없이 말씀만으로 우주 만물을 지어내신 분이 그런 일을 못하실 리가 없다. 세례성사로 우리는 바로 이분의 자녀가 됐고 예수님 덕분에 이분을 아버지, 어머니, 이모,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하게 됐다. 도움 봉사 헌신 희생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이고 그것이 사랑이다. 삼위일체가 완전한 사랑인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 사랑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다. 육체가 없으면 바치고 싶어도 바치지 못한다. 작은 항아리 하나도 채우지 못하는 진흙 덩어리에 쓸데없이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세상으로 초대받은 존재라는 고귀한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내 안에는 하느님처럼 사랑할 수 있고 예수님처럼 봉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 저를 세상 걱정 없이 살게 부르신 것은 특혜가 아니라 당신의 증인과 사랑의 증거가 되어 달라는 겸손한 부탁입니다. 만 탈렌트 빚의 탕감,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먹고도 남을 음식, 여섯 개의 큰 항아리에 가득 찬 고급 포도주, 값비싼 향유 한 항아리를 통째로 당신에게 다 부을 정도 하느님은 정말 부자십니다. 그러니 그분 뜻 안에 사는 이는 그렇게 풍요롭습니다. 주님은 가족도 없는 떠돌이 가난뱅이가 아니라 우주가 모두 당신 것이었습니다. 저도 주님처럼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깊은 바다색의 겉옷은 어머니가 하느님의 뜻을 남김없이 흡수하셨음을 상징합니다. 제가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느님 뜻에 순종하고 따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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