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7일 중재자

이종훈

8월 7일 중재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여러 불평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들의 모든 불평이 부당한 것은 아니었다. 마실 물, 먹을 음식을 달라는 그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어서 하느님은 응답하셔야 했다. 그 때마다 모세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백성들이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하느님은 대단히 진노하셨다(탈출 11,10). 매일 일용한 만나를 내려주고 물도 터져 나오게 해주었으면 됐지, 무슨 고기까지 먹게 해달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감히 하느님의 진노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느님께 백성들의 불만을 정당한 요구라고 설명했다(탈출 11,111-15).

 

하느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셔도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던 것은 아닐까? 우리 사람은 먹고 마셔야 하고, 때로는 고기도 먹고 싶다. 그뿐만 아니다. 일도, 취미도, 정감적인 생활도, 친구도 필요하다. 하느님은 당신이 손수 빚어 만드셨지만 인간들의 진짜 삶은 잘 알지 못하셨나보다. 그래서 스스로 사람이 되셨을까?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시려 내려오셨던 것처럼(탈출 3,8), 이제는 우리들의 진짜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시려고 사람이 되셨을 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은 세상살이를 아셨다. 아니 배우셨다. 우리가 받는 유혹과 견디어내야 하는 고통, 슬픔과 절망의 어두움 그리고 기쁨과 희망이 어떤 것인지 잘 아셨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에게 요구하는 모든 이들의 청을 다 들어주셨다. 마치 그들에게 큰 빚을 진 사람처럼 그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삶, 우리의 고통, 목마름, 불안,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일 거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는 대사제가 필요하다(히브 4,15). 이런 중재자가 필요하다. 

 

모세는 목숨을 걸고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변호했다. 이제 하느님께 우리를 변호해줄 또 다른 모세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하느님의 오른편 앉아서 우리가 상세히 우리 처지를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연민으로 시작되고, 내어줌으로 일관되며, 희생으로 완성된다. 우리의 삶을 배우시려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삶을 나누시고, 우리의 죽음을 떠 맡으셨으며, 영원힌 없어질 수 없는 사랑의 보증을 쌓아주셨다. 

 

“우리의 유일하고 완전한 중재자 예수님,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자꾸 그렇게 되어 버려서 

부끄럽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으니 

정말 염치없지만, 

오늘도 저를 섬겨주십시오. 

저를 위해 변호해주십시오. 

저의 잘못된 행동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우겨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얼굴을 들 힘도 없어 용서를 청하지도 못 하는 

가련한 인생이라고 잘 말씀드려달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저를 단죄하고 

때로는 성직자들과 교회도 저를 외면하여도 

예수님만은 저를 모른다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가 아니면 기댈 곳이 없는데도 

면목 없고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말도 하지 못하는 

이 죄인을 대신해서 그 자비를 얻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예로부터 어머니는 죄인들의 피난처라고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비를 틀림없이 얻어주실 것이라고 믿게 해주시고 

그래하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교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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