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3월 1일 내가 바라야 할 것

이종훈

3월 1일 내가 바라야 할 것

 

우리 신앙의 선조들, 순교자들의 삶은 비참하다 못해 처참했다. 마치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서 거지 라자로(루카 16,20-21)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단지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계명대로 살기 위해서 그 모든 불이익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고 박해를 피해 산 속이나 버려진 척박한 땅에서 함께 모여 살았다. 외형적으로는 분명 비참하게 됐지만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여겼을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비참하게 되는 것을 감내했다. 자신이 천주교인임을 드러낼 수 없어서 이웃들에게 입교를 권유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스스로 천주교인이 된 것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곧 삶이고 또 생명이었다. 

 

믿음은 그들을 비참하게 살게 했고, 죄인으로 죽게 했다. 오늘날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입교 권유는 고사하고 과연 교회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숫자는 매우 적겠지만 분명히 있다. 그러니 교회가 멸망하지 않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안에서는 의인 10명을 찾을 수 없어서(창세18,32) 그 도시들은 멸망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인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 의인들을 만나 그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 듣고 싶고 감화되고 삶의 양식을 얻어 살아갈 힘을 재충전하고 싶다. 그런데 신앙의 선조들이 예수님을 매일 뵈었을 리가 없고, 더군다나 성체를 받아 모시지도 못했는데도 그렇게 살았다.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의인들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성찬례에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매일 특별하게 하느님 현존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들을 만나고 싶은 바람보다는 더 크고 깊은 믿음의 은총을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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