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5일(첫 토요일 성모신심) 저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이종훈

55(첫 토요일 성모신심) 저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피정 봉사 마지막에 성찬례 봉헌한 뒤 성당 밖에서 신자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피정의 성찬례는 그 피정의 절정이라서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게 체험하고 굳은 결심으로 그에 응답하는 시간이다. 한 신자가 급하게 다가와서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 분이 깊게 회심을 한 것으로 여기고 이유를 조심스럽게 묻자, 피정 중 주님의 사랑에 너무 감격해서 영성체 할 때 두 손의 위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었다.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왼손이 위든 오른손이 위든, 미사보를 쓰든 안 쓰든, 감실을 향해 절을 하든 제대를 향해 절을 하든, 사제가 미사지향을 부르든 안 부르든, 그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것들이 우리 구원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그리스도 예수님을 삶의 모범이요 스승이며 주님이요 하느님으로 모신다. 그분은 당신이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의 사랑은 보편적인 인류애였다. 그 모범을 따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민족, 언어, 피부색, 계층, 이념을 넘어선 보편적인 사랑, 큰 사랑을 지향하며 기도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본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에게 예수님의 이 보편적인 큰 사랑은 분명 도전이고 어려운 숙제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순교자들과 많은 성인들이 증언하였다. 가깝게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엄격한 신분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자 그들은 박해를 피해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야 하는 고난을 선택했다. 더 좋고 참된 것 영원한 것을 알아버렸으니 삶이 더 고단해진다고 해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익숙한 삶을 포기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지만 그것도 그들에게는 기쁨이고 영광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을 참수하던 이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민족에게 가장 가까운 신앙인의 모범으로 안중근 토마스 의사이다. 그는 독립군이었다. 그는 하얼빈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그는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사명을 수행했고, 그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항거이고 더 나아가 동양평화를 위한 헌신이었다. 감옥에서도 그는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책을 읽고, 명상했다고 한다. 사형집행 날에 마지막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5분만 시간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못다 읽은 책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그런 대답은 평소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에게는 삶과 죽음이 큰 차이가 없고 죽음은 그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정도였던 것 같다. 얼마나 두려운 마음인가! 그래서였을까, 그를 증오하며 괴롭히기 위해 자원입대하여 간수로서 안중근 의사를 감시하고 괴롭혔던 한 일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의사가 사형을 당한 뒤에 간수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가서 매일 아침 사당에서 의사를 위해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가 임종을 앞두고는 그의 부인에게 의사를 위해 매일 아침 제를 지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안중근의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는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賦)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과연 그 어머니와 그 자식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이다.

 

우리의 신앙은 현실기복을 지향하지 않는다. 자녀로서 아버지 하느님께 현실의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청함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무속인에게 악귀를 쫓아내달라고 부탁하고 점집에 가서 자신의 미래를 물어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하느님처럼 큰 사랑을 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교회 울타리를 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세상의 영웅은 후세 교육을 위해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친구요 형제자매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긋이 바라보신다. 그 눈빛은 나를 너머 저 영원한 세상을 향하고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복잡하고 시끄러운 이 세상 속에서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 두게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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