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사랑하라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다. 먼저 왔다고 먼저 떠나지 않는다. 도인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알았다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언제 한 생명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떠날지도 알지 못한다. 하느님만 아신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사이비 종교의 좋은 돈벌이 수단이다. 그들은 그날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속아 넘어간다. 참 안타깝다. 한 발작만 물러나 그들의 주장이 상식적인지, 또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어떻게 사는 지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시작도 끝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 없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니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살아있어 뭔가 할 수 있고 또 그 일이 의미가 있어서 그런 하루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생은 슬프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분의 행복선언(마태 5,3-12)은 모두 거짓말이다. 그분의 삶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분은 참으로 행복하셨다. 우리도 당신처럼 행복하기를 바라시며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분의 계명, 서로 사랑함이 그 길이다. 수천 년 동안 같은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 계명을 지켜 목숨을 내놓고 또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 이름까지 남겼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복이 평생 가족들의 뒷바라지에 헌신한 이름 모를 한 여인의 행복보다 크지 않다.
행복하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말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매일 기쁘고 즐겁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처럼 걱정거리, 속상한 일, 미움, 다툼, 유혹은 일상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흐릿해서 믿음으로밖에는 그분을 뵐 다른 길이 없지만 마지막 날에는 모든 것을 뚜렷하게 보게 된다. 믿는 이들에게 그날이 자연스럽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지극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예수님은 그날이 자연스러웠지만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아 스승까지 버리고 도망쳐버렸다. 하느님의 분부에 따라 큰 배를 만들었던 노아에게 홍수는 자연스러웠고, 롯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아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고리타분하지 않다. 변하지 않으니 진리이다. 진리를 찾는 이들이 하느님이 주신 양식을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37).”
Alberione, alberione, Catholic, catholic, content, contents, Contents, contents.pauline.or.kr, gospel, Gospel, FSP, fsp, pauline, Pauline, pauline contents, 카톨릭, 가톨릭, 교리, 교리교재, 꿈나무, 바오로가족, 바오로딸, 바오로딸 컨텐츠, 바오로딸 콘텐츠, 바오로딸컨텐츠, 바오로딸콘텐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바오로딸 수도회, 주일학교, 콘텐츠 바오로딸, 콘텐츠바오로딸, 알베리오네, 야고보 알베리오네, 이종훈, 이종훈 신부,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이종훈 마가리오 신부님, 마카리오 신부님, 마가리오신부님, 마카리오신부님, 마가리오 신부님, 마가리오, 마카리오, rio, Rio, 구속주회,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cssr, 강론, 강론말씀, 복음강론, 강론 말씀, 복음묵상, 복음 묵상, 복음 강론, 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영원한기쁨, 영원한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