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21일(성모자헌) 진리의 달고 단 맛

이종훈

11월 21일(성모자헌) 진리의 달고 단 맛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고추장을 만들던 날이었다. 나에게는 생전처음이었지만 당신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심부름꾼이고 힘쓰는 돌쇠역할이었다. 과정은 복잡했고 하나하나가 매우 신중해야 했다.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 같았다. 지치고 힘들어 살짝 짜증이 나려는 그 때 우연히 보게 된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아이 얼굴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또 먹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땅에서 좋은 재료가 나오고, 그것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것들을 다듬고 씻고 불리고, 숙성되고, 끓이고, 식히는 등 모든 것이 기다림이다. 발품 팔고, 고민하고,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명인들은 능숙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모든 과정을 원칙대로 하는 이들일 것 같다. 그 과정의 수고스럽고 힘들어도 그들이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래야만 제 맛이 나고 맛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교회를 다녀온 어떤 신부님에게 다른 신자들이 그들이 진짜 신자인지 의심스럽다고 하자, ‘그러면 여기에 있는 신자들은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가톨릭교회는 명품교회라는 오명을 썼다. 교회가 얼마나 세속화되었으면 그런 말까지 나왔겠나.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성인들의 수고와 땀을 거름으로 자라난 교회가 어쩌다 이런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 씁쓸하고 부끄럽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의 사람들이고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 관계를 가족관계로 설명하셨다(마태 12,50). 예수님과의 관계는 곧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산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이들에게 부와 명예, 안전과 성공을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도전과 박해를 예고하셨다. 당신의 십자가 길을 따라와야 한다고 하셨다(루카 9,23). 고통과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진리의 달고 단맛을 마음으로 느낀 이들이거나 그것을 고대하는 이들이다. 그 과정에 수고와 고통 그리고 박해가 있어도 그 길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의 그 단 맛을 기억하고 또 그 길을 따라 가면 반드시 그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견디는 자는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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