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1월 24일 부활과 영생

이종훈

11월 24일 부활과 영생

 

부활이 없다는 증거로 내세운 그 사두가이들의 이야기(루카 20,27-33)를 솔직히 그냥 웃어넘기기 쉽지 않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이 부활의 전부가 아님은 알지만, 그렇다고 부활이 무엇이고 그 때는 내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사는 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천사와 같아진다고 하셨지만(루카 20,36) 천사를 본 적이 없으니 죄송하지만 예수님의 그 설명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내세와 영생 교리는 사이비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처럼 그들 모두는 그것에 대해 확신을 갖고 가르친다.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믿음 말고는 그것을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고 수만 번을 결심하고 고백해도 우리 믿음 안에는 불신의 부스러기들이 없을 수 없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살다 오신 분처럼(요한 6,62) 또는 마치 부활의 세계를 보고 계시듯(요한 8,38) 말씀하셨다. 사람들과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도 저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을 알려주셨다. 사이비 종교지도자들도 종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주장한다. 웃긴다. 예수님도 돌아가시고 묻히셨는데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진리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여기서건 저기서건 오래 사는 게 아니고 시체의 소생이 부활이 아니다.

 

그것이 아님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셨고 사이비 종교도 그것을 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을지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참된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것은 그 삶의 열매를 보면 된다(마태 7,20).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 살았던 이들이 맺어 사람들에게 남겨준 그 열매들을 보면 안다. 거짓 예언자들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겉은 거룩하고 참되 보여도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마태 7,15). 이것이 선택의 기준이고 사랑이 그 확신을 키운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그분처럼 여기서도 저기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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