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대림 4주일) 아름다운 사람들
대림초 4개가 모두 켜졌습니다. 그래도 어두운 성당 안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아무리 잘 했다 해도 참 빛이신 그분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못함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실 준비를 잘해왔기 때문에 주님이 오심이 아니라 그분이 오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오십니다. 참 빛이신 주님이 오셔야 어두운 이 세상도 비로소 밝아질 수 있습니다.
즐거운 성탄을 보내라는 메시지를 자주 받습니다. 성탄은 즐거운 시간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이 먹고 마시며 노는 날이 아님을 잘 압니다. 그 날은 하느님께서 오래 전에 약속하셨던 대로 구세주를 보내주셨음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또한 앞으로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실 때도 첫 번째 오셨을 때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에 오심을 알고 그날을 잘 준비하기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은 밤도둑처럼 찾아오겠지만 어둠 속에 살지 않아서 그날이 우리들에게는 도둑이 덮치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다(1테살 5,4).
오늘 우리사회의 현상을 말해주는 대부분의 지표가 어두운 것 같습니다. 지난봄에는 당장 통일이 될 것처럼 감격하고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헛소문과 엉뚱한 주장들도 들립니다. 그들은 우리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득의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여러 정책들이 나왔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일반 서민들의 단순한 바람, 즉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고자하는 마음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바람인가 봅니다. 정치인들에게 모범적인 생활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비리와 추문이 보도될 때마다 많이 속상합니다. 여기에 가장 양심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할 종교인의 추문들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악(惡)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 기운만은 분명히 느낍니다. 그것은 참으로 강력하면서도 교묘하게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체도 없는 적에게 공격만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게 어떻게 맞서 싸워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은 참 어둡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참 빛이신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아님을 잘 압니다. 주님만이 이 짙은 어둠을 걷어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믿음이 세상사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알고 배운 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충실은 하느님을 신뢰함이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곧 믿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여인들에게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즈카르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루카 1,20) 그의 부인은 천사의 말대로 정말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믿어서 아이를 가졌습니다(루카 1,42). 백성들이 당신의 말씀을 믿든 안 믿든 하느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 안 믿어서 벙어리가 되는 것보다는 불안하고 힘들지만 믿고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종교가 세상 속에서 하는 일이 외형적으로 많이 적어졌다고 해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느님은 세상창조 때부터 오늘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일을 완성하실 겁니다. 그날이 마지막 날입니다. 주위가 어두울수록 작은 빛이 더 밝게 보이듯이 하느님이 아니 계신 것 같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우리 작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더욱 빛을 냅니다.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 하느님을 떠난 세상 속에서 하느님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미카 5,2)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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