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4월 22일(부활팔일축제 월요일) 달콤한 죽음

이종훈

4월 22일(부활팔일축제 월요일) 달콤한 죽음

 

좋은 비디오를 봤다. 그분의 책으로만 뵙고 존경하던 수사님의 대담영상이었다. 아흔의 할아버지가 되셔서 얼굴과 손에 검은 반점도 많고 말씀도 어눌하셨지만 그분의 나눔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언제나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씀하시지만 그 메시지는 너무 명확하고 강해서 단상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연설보다 더 크게 마음을 울렸다.  

 

그분은 작년에 그렇게 그리던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그걸 생각하니 슬펐지만 웃으시며 죽음을 달콤하다고 표현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저절로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눈물과 미소,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는 아주 이상한 시간이었다. 거기에는 공포와 두려움 따위는 감히 다가올 수 없었다. 마치 악마가 하느님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분은 대담이 이루어지는 줄곧 하느님 이야기만 하셨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동료 사제의 강론이 10분을 넘기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왜일까? 그것은 그분이 평생 하느님을 찾으셨음을 알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분의 얼굴 특히 그분의 눈은 평화롭고 맑았다. 하지만 강했다. 그 강함은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신뢰였다. 그분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속내를 다 들키게 될 것 같은 힘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자신의 꿈과 이상, 세상의 폭력과 인간의 고통이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계절이 바뀌며 자연이 변하는 것처럼 나고 자라고 죽고 또 나고. 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그분에게 매료돼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는 고작 작은 다리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수사님은 이미 여기서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가르치고 또 그렇게 사셨던 것 같다. 존경스럽고 그래서 그립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만, 나는 그분처럼 살 수 없다. 하루에 너 다섯 시간씩 명상할 수는 없다. 그분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다. 하지만 가는 길은 같다.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나의 꿈도 우리의 꿈도 아니고 하느님을 소유하려는 거룩한 욕망도 버린 오직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마음만 지녀 자연스럽고 그래서 가볍게 살고 싶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 삶은 수고이고 고통이지만 주님을 알고 믿어 그것은 기쁨과 희망으로 바뀝니다. 삶의 수고를 어깨에 메고 주님의 뒤를 따르면 반드시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리라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가브리엘 천사의 초대에 ‘네’라고 대답하셨던 그 마음을 저에게도 가르쳐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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