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31일 순례

이종훈

8월 31일 순례

 

어느 날 보니 내가 있었다. 나는 아무런 바람과 의지가 없었는데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다. 그러니 나는 만들어졌고 누군가 나에게 생명을 주었다. 생명이 주어졌으면 그와 함께 시간도 주어진 것이다. 하느님이 나에게 생명과 시간을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생은 하나의 긴 순례이다. 순례목적지는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이다. 오늘날은 목적지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지금 자신에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 실패하는 일이 매우 적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묻고, 믿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묻고, 또 믿고 가야 했다.

 

내 생명의 주인님은 나에게 아주 많은 돈을 선뜻 맡기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맡기셨다. 한 탈렌트는 약 10억 원쯤 될 것 같다. 어떤 조건도 분부도 없이 나를 믿고 맡기고 멀리 떠나가셨다(마태 25,15). 주인님이 더디 오셔서 맡기신 그 돈이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그것은 엄연히 주님 것이다. 때가 되면 돌려 드려야 한다.

 

어떤 이는 보관하는 게 부담스러운 지 아무도 찾지 못할 땅 속에 묻고, 어떤 이는 호기롭게 그 돈으로 무엇을 한다. 주인님의 그 돈을 땅 속에 묻는 마음을 아주 잘 안다. 반면 그 큰돈을 막 사용하는 마음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걸까, 아니면 너그러우신 주님을 믿는 걸까? 주님은 나를 믿고 그 큰돈을 맡기셨다. 맡길만하니 맡기셨겠지. 잘 해서가 아니라 무엇이든 해보라고 그러셨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어김없이 돌아오시는 주님께 그대로 돌려드리는 게 더 안전할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를 통해 또 하나 좋은 것을 배우고 주님이 넉넉하게 주셨으니 잃어버린 것은 잊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예수님, 이렇게 큰돈과 시간을 제게 맡기셨습니다. 잘은 못해도 무엇인가 해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게 이끌어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가벼운 짐과 편한 멍에를 지워주시는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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