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밈의 가톨릭성인들

[최민정] 성 베드로 카니시오

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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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카니시오(St. Peter Canisius) 사제,교회학자,예수회


성인은 1521년 5월 8일 네덜란드의 네이메헌에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연이지만 이날은 예수회 창설자 성 이냐시오가 군 생활을 마친 날이면서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에서 추방된 날이다.
15세에 법률가의 꿈을 안고 쾰른 대학에 들어갔던 성인은 교수였던 예수회원 베드로 파브르 신부-예수회를 창립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첫 제자-를 보고 감화를 받아 신학으로 방향을 바꾸고 독신으로 살 것을 결심하였다. 이후 1543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154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성인은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뛰어난 설교를 펼쳐 유명해졌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의 두 회기에 참석해 26세의 젊은 신부로 주교들 앞에서 교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성 이냐시오가 설립한 예수회의 첫 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널리 퍼지던 루터 사상에 대항하여 가톨릭 신앙과 교리에 대해 호교론을 펼치던 성인은 1556년 일반 신자들을 위해 이해하기 쉬운 문답 형식으로 된 교리서를 펴냈는데, 이 교리서는 출간 즉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베드로 카니시오 성인은 트렌토 공의회를 시작으로 일어난 가톨릭 재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조차 '고상한 예수회원, 결점 없는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평할 만큼, 그 당시의 논객들 가운데서 가장 예의 바르고 올바르며 예리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펜과 신문의 영향을 감지하였으므로, 모든 인쇄업자와 출판사에 용기를 주었다. 종교분열로 인해 위기를 겪던 독일 교회에 끼친 영향 때문에 성인을 흔히 '독일의 두 번째 사도'로 부른다.
1597년 76세로 세상을 떠난 성인을 1864년 교황 비오 9세가 시복,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시성하였으며,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 출처: 성바오로딸수도회 성인찾기(https://fsp.pauline.or.kr/?c=saint&m=find)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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