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밈의 가톨릭성인들

[최민정] 성녀 바키타

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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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히타(St. Bakhita, Josephine)
수도자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성인인 바히타 수녀는 1869년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태어나, 백인 노예 상인에게 잡혀 노예가 된다.  

'운좋은'이라는 뜻을 가진 '바히타(Bakhita)'라는 이름은 그녀의 원래 이름이 아니라 그녀를 유괴한 이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노예시장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당했던 굴욕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었던 너무도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그녀는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던 것이다.  

치욕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중, 이탈리아 영사, Callisto Legnani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자라게 되면서 그녀는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어쩌면 영영 잊어버렸을 가족에 대한 향수도 되살릴 수 있었다.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영사가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을 때, 바히타는 그녀를 함께 데려가 줄 것을 청했다. 이탈리아에서 하느님을 알게 된 바히타는 1890년 1월 9일,  

드디어 세례를 받고 죠세핀(Josephine)이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된다. 날이 갈수록 그녀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그녀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하느님에게 빠져들어갔다.  

Canossian수녀회에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시작한 바히타는, 1896년 12월 8일에 종신서원을 한 이후 50여년 동안,  

Schio에서 주방일, 바느질, 문지기 등 다양한 소임을 수행하면서 하느님 사랑의 충실한 증인으로서의 겸손한 삶을 살았다.  

고향의 사투리가 섞인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는 어린이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친근감을 주었다. 온화하고 유쾌한  

성품을 지녔던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의 겸손함과 단순함, 한결같은 미소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그녀와 함께 지냈던 수녀들은, 고운 마음씨와 선함, 하느님을 알리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지닌 그녀를 존경했다.  

바히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병고의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병문안을 온 이들을 한결같은 미소로 맞이하는 등 믿음과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증거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모든 고통으로부터 그녀를 자유롭게 해 준 분은 바로 성모님이었다. 바히타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도 나의 성모여! 나의 성모여!"

였다. 1947년 2월 8일 그녀는 Schio의 Canossian 수녀원에서 수녀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의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려고 모여들었으며 그녀에게 전구를 청하였다. 그녀의 성덕은 모든 대륙에 알려졌으며 그녀에게 전구를 청한  

많은 이들이 은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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