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부활팔일축제 월요일) 불평 멈추기
어제 귀여운 만화 그림을 받았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무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시는 데,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이 방역 규정상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된다고 협조해달라고 부탁한다. 창을 들고 그렇게 말하니 부탁보다는 명령이다. 웃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고 무덤에 묻히셨다. 그분은 죽은 이들이 있는 저승에까지 내려가셨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 계셨으니 죽음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되셨을까 우려돼서 그러는 걸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 예수님도 돌아가셨다. 십자가형이 아니었어도 때가 되면 그분도 돌아가셨을 거다. 진리 같은 사실이지만 반갑지는 않다. 주변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게 때가 되면 알려달라고 청하며 쓸데없는 걱정은 날려버린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죽음의 공격은 그렇게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낙담하고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기가 꺾이고 풀이 죽어 생활의 활기를 잃어버린다. 한두 번은 견디고 이겨내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떠나 버리고 싶어진다.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아실까? 모르셨다면 그분은 사람이 아니다. 맞다, 그분도 실망하고 속상하고 슬프고 화나고 아프고 두려우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끝까지 좋은 일을 하시고 절망 중의 절망인 죽음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되살아날 것을 알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비아냥거릴 수 있지만, 인간에게 죽음은 그렇게 쉬운 적이 아니다. 그랬다면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건 거짓이다. 예수님을 괴롭혔던 건 죽음의 공포보다는 믿지 않고 변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세상을 위한 당신의 선행과 희생이 무의미하다는 유혹이 아니었을까?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이딴 세상을 위해서 괜히 헛수고만 했다는 마음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용서하셨다. 정말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세상은 본래 그랬고 하느님은 원래 그런 분이시다. 갈대가 부러졌다고 꺾어버리지 않고, 촛불이 꺼져간다고 훅 불어 꺼버리지 않으신다(이사 42,3). 바뀌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수없이 반복하는 약속을 바보같이 믿으신다. 그분이 나의 희망이다. 잘 모르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음에 한 표 던진다. 그리고 주님도 변하지 않음에 내 삶을 건다. 세상이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바보 하느님을 믿고 오늘도 좋은 생각만 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좋은 일을 한다. 예수님은 살해되셨지만 그분의 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내 안에 사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시다.
예수님, 주님이 사랑하시는 친구 프란치스코의 방문 앞에 ‘불평 멈추기’라고 써 붙어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불평해봐야 입만 아프고 마음만 시끄럽고 온몸이 어두워집니다. 세상을 못 바꿔도 좋습니다. 핵폭탄도 터져도 하느님을 희생시키고도 바뀌지 않은 세상을 어쩌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을 바꾸라고 부르신 게 아니라 제가 회개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을 믿어도 수시로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바꾸어 주님 뒤를 더 바짝 따르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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