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6월 25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평화와 용서
10년 전 안식년을 허락받았다. 봉쇄 생활을 하는 수도승 성소를 받은 건 아니지만 1년쯤은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영화에서 보는 유럽의 수도원은 아니었지만, 그 수사님들처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반년쯤 지났을 때 어머니의 큰 병이 발견됐다. 그 이후 나는 수도승이 아니라 간병인으로 살았다. 그다음 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제한적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 있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이제 뒤돌아보니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기도와 노동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그때 아주 잘 배웠던 것 같다. 예수님은 수도 생활을 하지 않으셨다.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다. 예수님의 삶이 곧 사랑이었다. 그분이 하신 모든 좋은 일은 한 마디로 용서였다. 십자가 죽음이 그 절정이었고 모든 사람이 하나가 돼서 하느님께로 돌아오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기를 바라셨다.
6.25 기념일에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한다. 지난 9일 동안 기도했고, 우리 공동체는 그와 상관없이 매일 기도한다. 70년이 지났으니 나를 포함해 대략 국민의 70%는 전후 세대다. 그래서인지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전에는 철저한 반공교육과 함께 통일을 민족적 과제라고 배워서 무조건 통일을 바랐다면, 지금은 평화와 하나 됨은 하느님 현존과 구원의 명백한 표지이기 때문에 통일을 바란다. 그리고 우리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시니 우리는 휴전에서 종전으로, 종전에서 평화로 그리고 통일이 될 거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다. 하지만 평화는 어렵고, 그 길은 정말 정말 험난하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평화의 시작은 용서이고 그리고 그리로 가는 길도 역시 용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얻을 수 있는 게 평화다(마태 18,22). 내가 용서한다고 평화가 오겠느냐고 냉소하겠지만 우리의 용서는 나의 용서부터 시작된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은 정말 보잘것없다. 밤에 모여 기도하고, 대북지원으로 아주 적은 돈을 보태는 게 전부다. 살아서 평화통일을 보지 못해도 좋다. 평화를 위해 기도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니 나는 하느님 편에서 하느님의 길로 걸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저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께서 지금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 기도하고, 믿는 대로 할 수 있는 일부터 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를 세상에 알리라는 사명을 받은 저희보다 먼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보다 훨씬 더 평화와 통일을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기적을 선물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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