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1월 23일 그날보다 오늘 여기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간을 지내면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억지로 외면할 사건은 아니다. 내 지상 생의 마지막 날과 세상 종말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둘 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바로 그날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한다.
숭례문이 불타던 날을 기억한다. 나라 사랑과 문화재 사랑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눈으로 보면서도 거짓말 같고 내 안에서도 뭔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은연중에 그것은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우리에게 숭례문 훨씬 그 이상이었다. 하느님의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을 거다. 온 국민이 정성을 다해 46년이나 걸렸는데 그것은 무너지면 안 됐다. 하지만 그것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은 그걸 예상하시고 우셨다(루카 19, 41).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정말 사랑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세상 종말을 두려워하면서 궁금해하는 것 같다. 21세기에도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이비종교들이 있으니 말이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그때가 언제며 어떤 징조들이 나타나는지 물었다. 그걸 알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였는지. 세상 마지막 날은 천사도 예수님 당신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날이 아니어도 때가 되면 죽는다. 그날은 내 알 바 아니고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내게 중요한 것은 그날이 아니라 오늘 여기다.
예수님은 하느님 집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으셨다. 그걸 부수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세우셨다. 주님 부활로 다시 세워진 이 성전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는다. 언제나 깨끗하고 신성하다. 믿든 안 믿든 그분은 내 안에 그리고 내 문밖에 서 계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아니 계신 곳 없이 다 계신다. 달나라에 집을 짓고 살면 거기에도 계신다. 그러니 여기저기 거룩하다는 곳을 찾아다닐 필요 없고 스타 신부님 따라다닐 필요 없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그러는 것도 어려워졌다.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전쟁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그분의 계명을 가벼이 여기는 거다. 오늘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하느님이 그렇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하심을 잊지 않는다.
예수님, 저는 땅에서 태어났지만, 저의 고향은 영원한 나라입니다. 세상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오늘 최신이 내일 구식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수천 번 읽고 들어도 매일 새롭고 생생합니다. 주님이 제가 기도하는 성전이고 영원히 사는 저의 집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전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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