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9월 10일 험담중지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 42).” 이는 율법학자나 바이사이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옛날에도 함께 사는 게 어려웠던 모양이다. 가족이든 직장이든 수도원이든 친교 단체든 함께 사는 게 쉽지 않다.
언젠가 한 형제가 식탁에서 어떤 정치인을 과격하게 비난했다. 그의 주관적인 해석이기도 하고 없는 일을 만들어 그를 모함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를 비난하며 쏟아내는 거친 말들이 구정물이 되어 내 머리부터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내가 쏟아내는 비난과 험담은 나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도 그렇게 더럽힌다.
뒷얘기와 험담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신이 나는지. 얼마나 재미있으면 험담을 할 때면 싫어하는 사람과도 하나가 된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바로 구정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마음을 발견하고는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상황이 되면 또 그러고 만다. ‘아이고 이 모질이...’
예수님은 범죄 현장에서 붙잡혀 온 죄인도 용서하셨다. 그런 분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거칠게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그들의 선입견과 교만이 커서 참된 것을 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요한 2, 25). 하지만 그분은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셨다.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심판은 틀릴 수 없었을 텐데도(요한 8, 15-16) 심판하지 않으셨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러니 구원받아야 하는 우리는 험담, 단죄, 판단을 얼마나 멀리해야 하는지 모른다. 교황님 말씀마따나 우리는 험담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거다. 심판은 우리 몫이 아니다.
예수님, 제 눈의 들보를 잊지 않습니다. 그걸 빼내야 제대로 볼 수 있겠지만 이 육체를 갖고 사는 한은 아마 못 할 것 같습니다. 험담과 비난하지 않고 제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마음에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잘 안 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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