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12월 14일(십자가의 성 요한 기념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 예수님의 이 말씀을 두고 어떤 학자는 신약성경의 요약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차지한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예언자들이 ‘아나빔’ 즉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스바 3, 13)’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말씀하셨을 거다. 강대국의 식민 지배 속에서 이방신을 섬기라는 강압을 받았지만,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받아 실제로 가난해졌다. 그래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 이들이 행복하고 하늘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씀이다.
착하고 의롭게 살아서는 부자가 되기는커녕 마음고생만 많이 하고 삶은 고달프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을 받는다. 그냥 다른 세상 사람들 하는 대로 한 눈 감고 하느님 말씀도 반만 듣고 살고 싶어진다. 그러면 분명 마음고생도 덜 하고 사는 것도 덜 피곤할 거다. 그렇다고 그게 행복한 거는 아니다. 마음고생을 한다고 무조건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건 아니다. 고단하게 산다고 다 불행한 건 아니다.
행복은 내적인 것이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의롭게 살려고 하는 이나 그것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이나 사느라고 수고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의 수고는 대세를 따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오롯이 하느님 뜻을 따르려는 애씀이다. 잘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실패하고 삐끗해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얼마 전까지 걸었던 그 길로 다시 걷는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한 거다. 그러면 마지막 숨을 아주 편하게 속 시원하게 내보낼 수 있을 거다. 그때부터는 그런 수고 안 해도 될 테니 말이다.
구약의 하느님은 폭력적으로 때론 잔인하게 보일 정도로 당신 백성을 괴롭히는 이들을 쳐부수신다. 하느님은 당신 말씀을 따르려는 이들을 유혹하는 것들을 단호하게 무섭게 대하신다. 당신 외아들의 목숨까지 내놓으시면서 당신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그분은 우리 중 하나도 잃고 싶지 않으신다. 우리는 끝까지 그분의 보호 아래 자신을 맡기고 싸움도 대신 해달라고 청한다. 제멋대로 살고 싶어 집을 나갔다가 거지가 되어도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괜찮다고 믿는다. 마음을 바꾸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믿고 그냥 바꾸는 거다.
예수님, 가난에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주님만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단순하고 완전한 신뢰를 가르쳐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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